한마리 원가 2100원인데 출혈경쟁에 납품가 떨어져


하림.마니커.체리부로 등 국내 15개 닭고기 생산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공동행위)을 인가해 달라고 신청한 것은 업체 간 구조적 출혈경쟁과 경영난에 따른 고육책이다.

업체 간 과잉 생산으로 생산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에 닭고기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공멸한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

닭고기 업체들은 대부분 위탁영농을 하는 양계농가에 사료비를 지원하고,닭고기를 납품받아 제품을 생산하거나 자체 사육공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콩.옥수수 시세 급등으로 사료비가 뛰고,고유가에 따른 시설유지비 부담에다 업체 간 과잉 생산이 겹쳐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다.

해마다 평균 6억5000여만마리의 닭이 시장에 나오는데,지난해 시장점유율은 하림이 30%,마니커가 20% 수준이다.

하림 관계자는 "닭 한 마리(1㎏)를 길러 출하하는 데 드는 순수 생산원가만 1430~1450원이고,여기에 도계비.판매관리비까지 합치면 2100원을 웃도는데 업체 간 과열경쟁으로 백화점,대형마트 등에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납품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닭고기 업계의 담합을 통한 가격동결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7월 닭고기 가격을 담합 인상한 16개 업체가 공정위에 의해 적발돼 총 27억원의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받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06년 당시 과징금을 물게 된 후 가격담합이 무너지면서 업체마다 물량 밀어내기에 목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닭 성수기인 여름철(7~9월) 이후 시세가 곤두박칠치는 것도 업체 간 과열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양계협회 관계자는 "여름철 한 마리에 1500원 하던 닭값이 한두 달 새 800~900원으로 뚝 떨어지는 것도 생산업체들이 물량이 남아돌자 알아서 납품가격을 낮춰 유통업체에 넘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생산업체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 간의 알력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유통업체들이 닭고기 업계의 과열경쟁을 이용해 싼 값에 납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백화점 육계담당 관계자는 "생산업체가 책정해 내놓은 가격을 주고 제품을 받고 있다"고 밝혔지만,닭고기 생산업체들은 "유통업체가 생산업체 간 출하 경쟁을 이용해 싼 값에 닭을 납품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도 고민에 빠졌다.

소비자 권익을 생각한다면 담합을 허용할 수 없지만 업계의 딱한 사정을 보면 원칙만 고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 인가를 받아 담합을 시행한 것이 총 7건에 불과하고 특히 최근 10년 사이 인가 사례가 전혀 없다"며 "지난해 11월 레미콘 업체 9곳이 공동행위 인가신청을 냈는데 지난 1월 말 기각됐다"고 밝혔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