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오리, 자식처럼 공들여 키웠는데…” 농민들 망연자실

AI 발생 전북 정읍시 소성면 인근 농장에 가보니 

방역 직원, 마을 출입 통제 차량·인원 꼼꼼하게 살펴

예방적 살처분 농가들 울상 “올겨울 어찌 날지 생계 막막”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더이상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

11월29일 오후. 인근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함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에 동참하고 있는 전북 정읍시 소성면 용정리의 한 육계농장 초입을 찾았다. 전날 AI 확진 판정과 함께 폐쇄된 소성면 기린리 육용오리농가로부터 불과 2.5㎞ 떨어진 곳이다. 2년8개월 만에 국내 닭·오리 등 사육 가금류에서 AI가 발생한 탓인지 농장 입구에 세워진 통제 초소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국적으로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Standstill) 명령까지 내려져 마을 분위기는 더 스산하고 삭막했다.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고 마을 골목길에도 인적이 뚝 끊겼다. 방역당국과 축산농가뿐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AI까지 발생한 것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출입 통제 초소는 농장 초입에 설치돼 있지만, 마을 입구부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들의 물샐틈없는 감시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방역 요원들은 전신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농장 출입 차량과 인원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기자가 탄 차량이 다가가자 곧바로 방역 요원 2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들은 “AI 때문에 출입금지됐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바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차를 돌리는데 초소 너머로 살처분작업을 연상케 하는 기계음 소리가 났고, 방역용 약품·물품이 든 상자를 바삐 운반하는 관계자의 모습도 보였다. 한 방역 요원이 “농장 주인은 어젯밤 살처분 대상으로 통지되자마자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안절부절 농장 주변을 서성였다”며 “병아리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공들여 키워왔다면서 속상해하는데, 너무 안쓰럽고 안됐더라”고 농장주의 심정을 대신 전했다.

안타깝기는 이웃 농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성면 화룡리에서 토종닭 7만2000여마리를 사육하는, 역시 살처분 대상으로 통보받은 박현수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겨울철 철새로 인한 AI 발생을 막기 위해 진입로에 거의 매일 생석회를 뿌리고 계사도 수시로 청소했다”면서 “잘 키운 닭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모습을 또 보게 돼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이 흘러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장 올겨울을 어찌 날지 생계 걱정이 앞선다”고 답답해했다. 정읍시 소성면에선 2008년·2016년에도 AI가 발생해 지역 내 가금류농가들을 가시방석에 올려놨었다.


<농민신문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