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계농장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동물복지농장 인증제가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다.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고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축산물을 사용하는 육가공 프랜차이즈도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축산 환경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오는 2027년부터 산란계농장에선 한 마리당 사육면적이 늘어나고 2030년부터는 돼지 임신사의 스톨 사용 규제가 적용된다. 이 같은 동물복지와 관련된 축사 환경 규제를 두고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축산농가들의 동물복지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낮았던 인증제 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동물복지 축산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인증 기준을 뛰어넘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농가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과 동떨어진 성급한 동물복지 관련 환경 규제는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흔히 소비자들이 떠올리는 동물복지 축산 이미지는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의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동물자유연대 의뢰로 리서치 회사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동물복지 유정란을 소비하는 소비자 중 난각번호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경우는 18%에 불과했고 그 외 동물복지 인증 달걀은 모두 자연 방목한 닭이 낳은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을 받은 달걀은 사육 환경 번호에 따라 1번 자유 방사와 2번 평사 사육으로 나뉘고 또 2번 달걀 중에서도 1층 평사에서부터 층이 있는 평사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유럽형 개방 케이지인 에이비어리 케이지의 경우 층수에 따라 1층 평사와 비교해 사육밀도가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은 물론 1층 외에는 흙바닥이 아닌 슬레이트 바닥에서 사육된다. 물론 홰를 이용할 수도 있고 날개를 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 케이지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사육 환경이다.
닭 방목 단점은 바이러스에 취약
많은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식하는 자연 방목 사육 역시 위험성이 존재한다. 잘 관리된 자연환경에서 자유롭게 본능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고, 큰 일교차가 있는 환경에서 과연 자연 상태가 무조건 닭들에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게다가 많은 철새와 야생동물들로 인해 유입되는 각종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도 자연 방목의 단점일 수 있다. 대한산란계협회 이성진 주임은 달걀의 품질 관리 면에서도 방사 사육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목 사육 자체가 토지 면적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여건상 맞지 않습니다. 온습도가 조절되고 정밀한 사양관리하에 사료를 급여하는 케이지 닭들이 낳은 달걀과 비교해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한 유럽연합(EU)에 매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자연 방목 사육이 꼭 건강하고 행복한 닭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 주임의 설명이다.
정부는 2030년부터 임신돈 군사 사육 의무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임신 스톨이 동물학대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과연 임신 스톨을 포함한 개별 스톨이 가축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시설일까? 일반적으로 수정이 이뤄진 임신돈은 분만사로 이동하기 전까지 제한된 공간인 임신 스톨에서 사육된다.
공장식 축산의 대표적인 사육 시설로 인식돼 유럽의 경우 2013년부터 스톨 사육을 금지했고 우리나라 역시 동물복지를 위해 임신돈을 가두지 말고 군사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축산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신규 농가에 대해서는 지난 2020년 1월부터 해당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단 기존 농가는 개별 스톨을 철거하고 2030년 1월부터 군사 사육을 위한 시설을 새롭게 설치해야 한다.
돼지 군사 사육은 폐사율 증가 초래
문제는 군사 사육이 곧 동물복지의 완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물들의 특성상 합사 과정에서 서열 다툼은 필연적이다. 임신돈의 경우 이 같은 서열 다툼이 단순히 상처를 입거나 체력이 저하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성으로 직결된다. 서열 다툼 과정에서 유산이 발생하거나 부상이 심해 도태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다. 충남 당진 <대주농장> 허찬석 최고운영책임자는 군사 사육 전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군사 사육을 시도한 농장들이 번식률 하락과 폐사율 증가 등으로 생산성이 낮아진 사례들을 많이 접한 터라 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처럼 경제성과 직결되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생산자들의 입장이다. 특히 시설 개·보수로 인한 비용 부담과 사육마릿수 감축, 생산성 저하 등으로 인한 수익 악화는 농가의 존립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들 역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허 최고운영책임자는 아직 5년이란 시간이 남은 만큼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정으로 돼지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단순히 임신 스톨을 제한하기보다는 스톨의 규격을 넓히거나 군사 사육과 스톨 사육을 혼합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이 논의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20년 서울 광화문에서 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동물 강제 착유 반대’를 외치며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착유를 위해 인공수정을 통한 강제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이 동물학대이며 폭력이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이들로 인해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임신과 출산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소비자들이 많았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제는 자연 교배와 비교해 인공수정이 과연 동물학대인지 여부다. 인공수정은 젖소에만 국한되는 사항이 아니다. 한우와 육우·말 등 대가축에는 인공수정이 일반적이고 최근에는 염소에게도 인공수정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인공수정이 축산업에 도입된 계기는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 질병 예방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자연 교배 시 흥분한 수컷으로 인해 암컷이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직접적인 생식기 접촉으로 트리코모나스병·비브리오병·브루셀라병 및 질염 등을 전염시킬 수 있다. 수컷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동물복지=채식’은 오해
매년 10월 2일은 ‘세계 농장동물의 날’로, 농장동물이 겪는 고통을 알리고 비인도적 처우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지정한 국제 기념일이다. 이날은 전 세계적으로 농장동물의 사육 환경 개선과 과도한 육류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동물복지가 채식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 분야의 동물복지는 사양관리나 사육 시설 개선을 통해 가축의 사육과 축산물 생산에서 발생되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5년 10월 기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농장은 총 503곳으로 산란계농장이 271곳, 육계농장이 155곳, 양돈농장이 30곳, 한우농장이 19곳, 낙농장이 28곳이다. 아직 육우농장과 오리농장 중에는 인증 농장이 없는 상태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 축산 현장에서 동물복지 실천도는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농가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실제 인증 농가 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에 30곳, 2024년 38곳, 2025년 10월 현재 49곳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활동가는 축산농가들의 이 같은 인식 개선이 완벽하진 않아도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동물복지가 무조건적인 채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이들이 채식을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농장동물이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수 있는 동물복지 축산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확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축산농장의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 지원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 확대가 더해져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하는 동물복지 축산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신문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