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파는 햄버거와 피자집에서 파는 치킨이 이제는 정규 메뉴가 되어가고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이 ‘한끼 경쟁’으로 재편되면서 브랜드 간 구분이 희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빅블러’는 ‘크게 흐릿해진다’라는 뜻으로, 원래 명확하게 구분되었던 산업이나 업종 간의 경계가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모호하고 허물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16일 프랜차이즈 업계에 따르면 bhc는 이달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스퀘어점에서 치킨버거 3종 판매를 시작했다. 기존 닭고기 메뉴를 햄버거 패티로 가공해 점심 메뉴로 내놓은 것이다. 보통 치킨은 저녁 시간대에 매출이 집중되는데, bhc는 낮 시간대 회전율을 높여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교촌에프앤비도 지난달 신규 브랜드 ‘소싯’을 선보이며 신메뉴 경쟁에 나섰다. 교촌치킨 주력 메뉴 대부분이 닭고기 부분육을 사용하다 보니 남는 가슴살을 활용해 햄버거, 샌드위치, 샐러드 등 신메뉴에 활용하고 있다.
버거와 치킨에 주력하는 맘스터치도 지난해부터 맘스피자 확대를 추진 중이다. 맘스터치 매장 내 매장(숍인숍) 형태로 입점을 늘리고 있다. 9월 기준 맘스피자 매장은 총 187개이며 이 중 154개가 숍인숍 방식이다. 연말까지 26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굽네치킨을 운영하는 지엔푸드도 ‘블랙 트러플 스테이크 시카고 피자’와 ‘페퍼로니 시카고 피자’ 등 신메뉴 2종을 선보였다. 한국파파존스도 자체 치킨 브랜드 '마마치킨'을 론칭해 복합 매장 운영에 뛰어들었다. 최근 고려대점을 열며 현재 독립문점, 마포점 등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푸드 역시 ‘노브랜드피자’ 프랜차이즈를 정식화하고 있다. 2021년 테스트매장으로 시작한 대치점 이후 현재 4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출시 3년 만에 200호점을 돌파한 노브랜드 버거의 장점인 ‘가성비’를 앞세워 저가형 피자 시장에 앞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현상은 먼저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치킨 프랜차이즈는 2만9805곳, 피자와 햄버거는 1만8021곳에 달한다. 이미 포화상태로 경쟁 상황에서 배달 플랫폼으로 시장 구조가 변화하며 변화에 속도가 붙게 됐다. 배달앱에서는 브랜드 정체성보다 노출 알고리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거' 키워드로 검색될 때 노출되려면 버거 메뉴를, '치킨' 카테고리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려면 치킨 메뉴를 팔아야 한다. 한 브랜드가 여러 카테고리에 진입하지 않으면 소비자 검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MZ세대를 중심으로 '치킨집은 치킨만, 피자집은 피자만'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배달앱을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는 브랜드보다는 후기 평점과 메뉴 다양성을 보고 선택한다. 한 브랜드가 제공하는 메뉴 폭이 넓을수록 소비자 만족도가 높아지고, 바로 매출로 이어진다.
프랜차이즈 본사로서는 같은 설비로 다양한 메뉴를 생산할 수 있다는 효율성도 장점이다. 튀김기, 오븐, 소스, 패티류 등 공통 조리라인을 활용하면 새 메뉴를 추가하더라도 설비 투자 부담이 적고 공급망 단가 절감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소비되는 햄버거·치킨·피자를 한 매장에서 함께 판매할수록 가맹점 매출 극대화와 효율적 운영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이같은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도 프랜차이즈 업계들이 메뉴를 다양화해 매출 다변화와 생존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 예측된다.
<농민신문 1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