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모란농장> 정우진 대표는 태국에서 공연문화사업을 펼치다 갑작스러운 귀농으로 2대째 가업을 잇게 됐다. 깨끗한 물과 쾌적한 환경이 건강한 닭을 키우는 비결이라고 확신하며 자신만의 노하우로 이 두 조건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축산을 실현하는 농부로 변신 중인 그를 만났다.

경북 상주시 외남면에 자리한 <모란농장>은 7000㎡(2117평) 부지에 4만 5000마리의 닭을 사육하는 육계농가다. 대규모 농장이지만 자동 급이·급수 시스템과 축사 환경 원격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사육 관리를 컴퓨터로 하고 있다. 정우진 대표는 매일 상주 시내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하며 농장 일을 돌본다. 자동화된 시스템과 원격 컴퓨터 관리 덕분에 농장 운영이 유연해져 심리적 부담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극심한 더위에는 환기장치 등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한다.


정우진 모란농장 대표

“농장의 90% 이상은 컴퓨터로 원격 작업이 가능해요. 평소에는 기계 이상 유무만 체크하지만 고장이 나면 즉각 조치해야 하기 때문에 멀리 여행을 떠나긴 어렵죠. 특히 여름철에 환기장치나 급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1~2시간 안에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닭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요.”

콘텐츠 기획자에서 육계농장 대표로 변신

정 대표는 축산업계에서 보기 드문 이력을 지닌 청년농업인이다. 대학에선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문화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며 공연과 교육사업을 했다. 관련 경험을 쌓은 뒤 태국에서 공연사업을 준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으며 귀국하게 됐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육계농장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 정재현 씨는 1994년 <모란농장>의 문을 연 뒤 30년간 근면함을 바탕으로 육계 사육에 매진했다. 정 대표는 2018년부터 농장에 합류해 사양관리부터 육계 사육의 전반적인 노하우를 차근차근 익혔다. 이후 202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장 운영을 책임지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리를 잡아 갔다.

“지난해 운영권을 제게 넘긴 뒤 아버지는 농장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어요. 지금은 운영에 관여하지 않지만 기계 고장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도와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죠.”

귀농 6년 차인 정 대표는 아직 사육 경험은 부족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닭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농장 일을 지켜본 덕분이다. 그는 닭의 움직임이나 물 소비량, 배설물만 봐도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우진 대표는 축사의 자동화 시스템을 컴퓨터로 직접 제어하며 사육 환경을 관리한다.

실제 농장 운영에서도 닭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환경을 닭에게 맞춰 조정하는 데 집중한다. 그는 닭들에게 좋은 사료첨가제를 주는 것보다 쾌적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온도와 습도·수질·환기 등 기본적인 요소를 최적화해 생육 효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게 그의 사육 철학이다.

“처음엔 사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좋다는 첨가제는 다 써봤어요. 그런데 효과는 미미했고 비용만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정 대표는 닭 사육의 핵심은 ‘물 관리’라고 말한다. 그는 “닭은 하루 종일 물을 마시기 때문에 물의 질과 공급 상태가 사육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귀농 초기 수질 관리 때문에 겪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다. 지하수 수원지를 100m나 파고도 질산성 질소가 검출돼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다.

“질산성 질소는 농약 성분에서 비롯된 오염물질입니다. 그런 성분에 오염된 물은 닭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어요. 결국 고가의 정수 시스템을 추가로 도입하게 됐죠. 닭들이 어떤 사료를 먹는지보다 얼마나 깨끗한 물을 마시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료는 모든 농가가 거의 동일하게 공급하지만 물은 농가마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수질 관리에 아낌없이 투자해요.”

음수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해 물 관리

최근에 그는 음수 모니터링 시스템을 농장에 추가로 도입했다. 닭이 시간대별로 얼마나 물을 마시는지 실시간확인할 수 있어 사육 효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계기도 실수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물에 영양제를 타 놓고 외출했는데 밸브를 열지 않아 닭들이 6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어요. 처음엔 별로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닭의 출하율이 평소보다 20%나 떨어진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수익에 직격탄을 맞고 다시 한 번 물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닭이 마시는 물 관리를 위해 도입한 정수 시스템.

지난해 정 대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영농정착 지원사업의 일환인 청년농업인에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노후한 축사시설을 정비하고 농장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총 6억 원을 투자했다. 지원사업의 저리 대출을 활용해 30년 가까이 사용해 온 축사 지붕을 내열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구조물로 교체했다.

햇볕·습기·온도 등 외부 환경에 강한 소재를 사용해 부식 발생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사육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한편 지원사업 프로그램의 하나인 청년농업인 필수 교육도 이수했다. 유익한 내용도 있었지만 육계 분야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축산 전체를 통합해서 교육하기 때문에 육계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어요. 농촌진흥청 강의도 대부분 20년 전에 만든 자료더라고요.”

축산·과수 연계한 자원순환형 농장 목표

정 대표는 아직 육계 분야에 저탄소 인증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그 기준에 맞춘 사육 방식으로 전환을 준비 중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저탄소 인증 닭을 생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농업이나 축산은 결국 사람이 먹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키워야죠.”


정우진 대표가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포도.

정 대표는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사육밀도를 조정해 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저탄소 인증 기준을 선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또 정 대표는 축산과 과수농업을 연계한 자원순환형 농장 모델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20년부터 축사 운영과 함께 1818㎡(550평) 규모의 <샤인머스캣> 시설하우스를 운영해 왔으며 올해부터는 <블랙샤이니>라는 새 품종으로 전환해 재배를 시작했다.

자연 폐사한 닭은 냉동 후 폐사축 처리기로 분쇄해 포도나무의 영양제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포도농장의 생산성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정 대표는 이러한 순환 구조가 기후 위기 대응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육계농가를 꿈꾸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임대 농장부터 먼저 경험해 보라”고 조언한다.

“육계농가는 대부분 대형 육계회사와 계약을 하고 운영해요. 그러니 처음부터 큰돈을 들여 농장을 짓기보다는 임대 농장에서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에요. 그렇게 2~3년 경험해 보고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 때 농장을 꾸려도 늦지 않습니다.”


<농민신문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