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죄를 어떤 벌로 받을지 모르겠어요…”

21일 전남 담양군 봉산면의 한 양계장에서 농장주 정종문씨(66)는 침수 피해로 죽은 닭을 보고 연신 담배를 피우며 자책의 말을 쏟아냈다. 17일 오후 폭우로 삼계탕용 육계 11만5000여마리를 키우는 양계장 7동에 무릎높이까지 물이 차며 키우던 닭 대부분이 폐사했다. 당시 정씨네 가족은 물에 잠기는 집과 양계장을 보면서도 최소한의 짐만 챙겨 급히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치우지 못한 사체에선 심각한 악취가 진동했고 살아남은 닭은 사체더미 위를 헤집고 다니며 방치돼 있었다. 

그는 “닭을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는데 당장 일정을 잡지 못해 손을 못대고 있다”며 “살아남은 닭도 함께 처리해야 하는데 사체와 닭을 보고 있으니 맨 정신으로 견디기 어렵다”고 괴로워했다.

최근 며칠간 쏟아진 폭우로 전남지역의 축산피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20일 오후 4시 기준 23농가에 29만8000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이 가운데 닭이 17만5000마리, 오리가 12만3000마리로 몸집이 작고 대피가 어려운 가금류에 피해가 집중됐다.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 발표에 따르면 담양군에서 육계 6만2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정씨네 양계장에서 폐사했다고 주장하는 닭이 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피해농가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복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폐기물처리업체에 문의한 결과 처리비용만 1억원이 넘게 든다고 하는데 지자체에선 3000만원까지 밖에 지원을 못한다고 한다”며 “시설 개보수와 재입식 등을 포함하면 3억~4억원의 피해가 예상돼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그러면서 “가축재해보험에 가입은 했지만 계열화사업을 통해 닭을 출하하는 기업에 병아리·사료값 등을 내면 복구에 쓸 돈이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살아남은 기축도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같은날 무정면의 한 젖소농장엔 폭우로 쏟아진 토사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곳에선 젖소 10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아직 침수로 폐사한 젖소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농장주 이철수씨(53)는 “포크레인을 불러 토사물을 퍼내고 있지만 피해가 심해 작업진행이 더디다”며 “젖소가 흙에 파묻혀 제대로 잠을 못자고 먹는 것이 시원찮다 보니 살이 빠지고 유방염이 발생한 소도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피해농가들은 배수시설 추가 설치와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2020년 집중호우로 침수가 발생했을 때 배수시설 추가 설치를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아 또 이런 피해가 발생했다”며 “배수시설을 정비해 피해를 예방하고 종합재난지역 선포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지원에 나서달라”고 입을 모았다.

<농민신문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