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닭고기
카르노신·앤서린 성분 풍부해
항산화 작용·피로 해소에 도움
한국의 맛과 향 더한 양념치킨
외국인도 즐기는 K-대표 야식
더운 여름엔 역시 닭고기다. 복날 삼계탕 한그릇이 기운을 북돋워주는 느낌은 인삼보다는 닭고기 자체의 영양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 닭고기에는 카르노신·앤서린과 같은 펩타이드 성분이 풍부하다. 특히 닭가슴살에는 카르노신과 앤서린을 합해 100g당 1223㎎이 함유돼 있는데, 이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들 성분은 항산화 작용과 피로 해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강도·단시간 운동으로 운동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근육 피로를 지연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닭고기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다이어트 중에 자주 찾는 음식이기도 하다. 닭가슴살 100g 기준으로 단백질은 22.97g인데 비해 지방은 0.97g에 불과하다.
닭고기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이며 쉽게 접할 수 있는 육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나는 집에서 쇠고기나 양고기 따위를 먹고 있는데 남편은 밖으로 나돌면서 고급 닭고기와 자고새를 먹는다”는 한 여인의 푸념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닭고기는 오랫동안 귀한 고기로 여겨졌고 지금처럼 저렴하고 흔한 식재료가 된 것은 20세기 이후 대량 생산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대형 닭은 서구에서 품종 개량 붐을 일으켰고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하는 육계의 등장을 이끌었다.
이제 닭고기는 사료전환효율이 매우 높은 육류로 주목받고 있다. 닭은 2㎏의 사료로 1㎏의 고기를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다. 대량 생산 체계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있긴 하지만, 1928년 미국 대선 광고에 “모든 가정의 냄비에 닭고기를!”이란 선거 구호가 사용되었단 걸 감안하면 집에서도 쉽게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지금이 참 좋은 시절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단 한끼만 먹을 수 있다면 최고의 선택은 양념치킨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담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닭을 튀겨 먹는 방식이 세계적으로 흔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닭은 주로 소규모 농가에서 달걀을 얻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었고 산란을 마친 노계는 푹 고아 먹는 방식으로 요리했다. 반면 프라이드 치킨의 전제조건은 부드럽고 순하게 사육된 닭고기다.
뚜렷한 향미가 있는 쇠고기나 양고기와 달리 닭고기는 그 자체의 풍미가 강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요리사들은 닭고기를 빈 캔버스에 비유한다. 같은 캔버스에 서로 다른 예술가가 각기 다른 작품을 그리는 것처럼 닭고기에 어떤 소스와 향신료, 요리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탄생한다. 양념치킨에는 현대 한국의 맛과 정서, 문화가 모두 담겨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하며 대중적 육류인 닭에 한국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맛과 향이 더해졌다. 밤늦게 맥주와 함께 즐기는 치킨은 한국 야식문화의 대표다.
요리사 한명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작은 식당 ‘야망’에서는 살사와 피시소스를 써서 단맛이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맞추고 커민·계핏가루·백후추로 복합적 풍미를 끌어올린 양념치킨을 낸다. 손님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서울에 오면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그들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하다.
<농민신문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