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윤석열 정부 3년 농정 평가
②혼선만 부른 농업정책 3가지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①청년농 3만명 육성
충분한 예산 없이 ‘3만명 채우기’ 급급…예견된 파국

'농업판 전세사기' 격렬한 비난
농정 신뢰 스스로 무너뜨려


충분한 토론과 준비 없이 시행돼 현장 혼란을 불러온 대표적 사례 중 첫 번째는 청년농 3만명 육성이다. 연초부터 큰 홍역을 치른 청년·후계농 육성자금 대출 중단 사태는 청년농 3만명 공약에 따라 대상자 선발은 대폭 늘려 놓고, 예산은 그만큼 확보하지 않으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해 배정된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 8000억 원이 8월경 조기 소진되면서부터다. 민원이 빗발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000억원의 자금을 추가 배정했지만 8월20일 이전 계약에 한정돼 있어 현장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관련 예산이 8000억 원일 때도 자금 조기 소진으로 홍역을 치렀는데, 올해는 6000억 원으로 2000억 원이나 더 줄어든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갑자기 자금 배정 방식을 선착순에서 선별 지원 방식으로 변경한다. 높은 자금 수요, 사업계획 부실로 인한 연체·부실채권 발생 우려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결국 예산 부족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이같은 정부의 꼼수는 또다시 대란을 불렀다. 상반기 대출 신청자 중 75%가 탈락,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출길이 막힌 청년·후계농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육성자금만 믿고 농지를 계약했다 계약금을 날리거나, 시설공사 잔금을 치르지 못해 업체로부터 소송 압박을 받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피해를 본 청년·후계농들이 들고 일어나자 농식품부는 뒤늦게 올해 지원규모를 1조500억원으로 늘리고 2024년도 선발자까지는 선별지원 적용을 취소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선발되는 청창농·후계농에겐 선별지원 방식을 적용하기로 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2022년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인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 청년농을 2027년까지 3만명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2018년 1600명으로 시작한 청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선정 규모는 2023년 4000명으로 늘어났다. 선발 인원은 올해와 내년 각 5000명에 이어 2026~2027년 각 6000명으로 더 늘아나는데, 예산은 그만큼 확보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번 후계농 육성자금 사태는 ‘청년에 대한 정부의 대출사기’ ‘농업판 전세사기’라는 격렬한 비난을 샀다. 우리 농업의 미래이고 국민의 먹을거리를 지켜갈 청년·후계농들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고, 예산에 맞춰 정책의 일관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행태는 농정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정부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청년농들의 꿈이 악몽으로 바뀌었지만, 정책 실패를 책임지고 사과하는 당국자는 아무도 없었다.

②무분별한 TRQ, 할당관세
민감품목까지 TRQ…3년간 할당관세로 관세 2조원 깎아줘

수입업자 등에 국세 퍼주고
피해는 농민에 고스란히


윤석열 정부 농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저율관세할당(TRQ)’과 ‘할당관세’로 농산물 수입을 크게 늘렸다는 점이다.

원래 TRQ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한 것으로, 일정량(시장접근물량)까지는 저율관세를,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수출국에게 수출 기회를 주면서도 수입량의 증가로 인한 국내 생산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현재 TRQ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정한 63개 품목을 대상으로 운영되는데, 시장접근물량 내에서는 무관세나 5~50%의 저율관세가 적용된다.

이와는 달리 할당관세는 국내 관세법이 정한 품목의 관세를 기본관세율의 40%포인트 범위에서 가감하는 탄력관세다. 그 목적은 △원활한 물자수급 또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정물품 수입 촉진 △수입가격이 급등한 물품 또는 이를 원재료로 한 제품의 국내가격 안정 등이다. 이 제도는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원료곡, 요소, 농약 원제 등에 적용해 농업 경영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활용됐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금배추’ 파동 이후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무관세, 저관세 수입이 급증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내 중요 생산품목이어서 수입이 증가하면 농가 피해가 커지는 민감 품목까지 마구잡이로 TRQ를 증량해 왔다. 예컨대 양파 TRQ 기본물량은 2만645톤이지만, 2023년에는 9만톤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양파의 관세는 135%인데, TRQ가 적용되면 50%의 저율 관세로 수입된다. 그만큼 농가는 피해를 입는 반면 수입업자와 이를 활용하는 곳은 큰 이익을 얻게 된다.

할당관세도 마찬가지다. 농산물 할당관세 품목은 2021년말 20개였지만,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35개, 2023년에는 43개, 2024년 상반기에만 67개로 크게 늘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대파, 무, 배추, 양배추, 당근, 바나나, 자몽, 포도, 오렌지 등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할당관세를 적용한 농축산물 수입액은 6조4000억원에서 10조8000억원, 10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2년~2024년까지 3년간 할당관세로 깎아준 관세 규모는 2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농산물 관세를 깎아준다고 수입 농축산식품의 가격이 내려간다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 미국산 냉장 소갈비는 2022년 7월 할당관세를 적용, 수입가격이 23% 떨어졌지만, 소비자가격은 되레 전년보다 45%나 뛰었다. 오렌지도 지난해 할당관세로 수입가격을 27%나 낮췄으나 소비자가격은 4.6% 올랐다. 결국 수입업자와 국내 유통, 식품대기업에게 2조원이라는 국세를 퍼주는 대신 농민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③농지 규제 완화 속도
비농민에 술술 풀려…식량안보 마지노선 150만ha 붕괴 직전

사회적 합의 없이 섣불리 추진
난개발·투기수단 전락 불보듯


윤석열 정부의 대선공약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질주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농지 보전 공약이다. 윤 후보는 대선 당시 “농지보전을 통해 식량주권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22년 12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 방안’을 발표, 44.4%인 식량자급률을 오는 2027년까지 55.5%로 끌어올리기 위해 농지면적을 150만ha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지켜지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투기 사태로 인해 그해 7월 23일 비농민의 농지 취득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진 지 3년도 안돼서다.

정부는 2024년 2월 21일 대통령 주재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농업진흥지역 자투리 농지 2만1000ha를 해제하겠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70배가 넘는 땅을 ‘자투리 농지’라고 한 것이다. 또 수직농장의 농지 설치 규제를 철폐하고, 비농민을 위한 농지내 임시거주시설(농촌 체류형 쉼터) 설치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올들어 농지 규제 완화는 더욱 진전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2월25일 ‘농촌소멸 대응전략 추진 상황 및 향후계획’을 통해 2026년까지 ‘농촌자율규제혁신지구’ 10곳을 지정하고 농지 이용·임대·활용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규제혁신지구에선 농지 규제가 크게 풀려 농업진흥지역 밖에서 농민 외 일반인의 농지 취득이 자유로워진다. 진흥지역 안이라도 주말 체험영농이 목적이라면 농지를 구입할 수 있고, 취득 즉시 임대차 거래도 허용된다. 농지전용 권한 전부를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할 계획이다. 또 20호 안팎의 소규모 거주시설과 텃밭을 갖춘 영농체험시설로 임대사업이 가능한 체류형복합단지 3개소를 연내 조성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 국회에 ‘농지제도 개혁방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 방안에는 농지 취득 후 자경 의무기간을 8년에서 3년으로 완화하고, 상속·이농으로 소유하게 된 농지의 소유 상한 1ha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말·체험 영농이나 시험·실습지 목적의 농지, 영농여건불리농지 취득 등에는 농지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도록 하고 농업진흥지역 농지도 주말·체험 영농 목적으로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임대차 허용범위의 경우 개인은 3년 자경 후 자율 임대차를 허용하고 농업법인이 단독으로 농지이용증진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사업 시행 주체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지자체 기본계획 수립을 전제로 진흥지역 외 농지 전용 권한은 전부 지자체에 위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농식품부는 검토 단계일뿐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이러한 개편 방향을 두고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과 농지법의 기본 이념을 위반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헌법 제121조에는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다만 ②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농지법 제3조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에는 ①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②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적시돼 있다.

물론 상속·이농으로 인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 생산성과 합리적 이용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농지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식량안보를 위한 적정한 수준의 농지 보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섣불리 추진할 일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그동안 추진된 농지 규제 완화가 대부분 난개발과 투기로 이어져 왔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2024년 말 전국의 농지면적은 150만4615ha.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 2027년까지 150만ha의 농지를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이 목표는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공언한 농지 보전 목표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강행되는 농지 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 4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