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논쟁] 동물복지형 축산농장

“전염성 질병에 오히려 취약” VS “지속가능한 축산업 밑거름”

윤진현 헬싱키대 동물복지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동물복지형 농장은 외부 환경과 접근성 커

동유럽 등 소규모 농장 ASF 발병률 더 높아

개별 농가뿐 아니라 지역·국가 모든 단계서 철저한 방역 선행될 때 ‘동물복지’ 의미 있어

김동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장

동물도 인도적 차원서 행복한 삶 살게 해줘야

좋은 환경서 큰 가축 인간에 더 이로울 수도

2012년 인증제 시행 동물복지 도축장 운영 전체 축산업 적용되는 사육 기준 강화안 마련


‘동물복지’가 축산업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17년 살충제 성분 검출 달걀 파동의 원인으로 ‘밀집사육’이 지목되면서 동물복지형 축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밀집사육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 전염성 가축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의 원인으로 비판받아왔다.

정부는 동물복지형 축산업을 육성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준 사육면적을 넓히거나 신규 진입농가에 동물복지형 사육시설을 의무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와 농가들은 동물복지형 사육시설이 가축질병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복지형 축산농장을 둘러싼 입장을 들어본다.


▶윤진현 헬싱키대학 수의과대학 동물복지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우리 축산업은 지난 수년간 AI·구제역 같은 가축 전염성 질병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이러한 가축질병의 위협이 있을 때면 동물복지형 농장이 마치 해결책인 양 늘 함께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례를 통해 동물복지형 농장에 가까운 형태로 평가받아온 소규모 농가들이 전염병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동물복지형 농장이 가축 전염성 질병 파문의 돌파구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축산업에서 동물복지는 단순히 동물을 학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동물이 가지고 있는 생리·정신·행동학적인 본능을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동물복지형 농장은 일반적으로 개체별 접촉 및 외부 환경과의 접근성이 크다. 이 때문에 동물복지형 농장은 전염성 질병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일반 농장보다 더 높다.

실제로 동유럽과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음식물 잔반을 돼지에게 사료로 급여하는 소규모 농장에서 ASF가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소규모 농장은 뒤뜰에서 가족들이 자급용 혹은 애완용으로 가축을 기르는 농장을 모두 포함한다. 평가 기준으로만 보면 관행보다 동물복지형 농장에 더 근접한 농장들이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 농장들은 대규모 농장보다 ASF 발병률 또한 훨씬 높다.

연구자들은 돼지들이 질병에 노출된 환경에서 사육된 점이나 수의사 방문이 뜸해 감염축에 대한 진단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던 점 등이 발병률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물복지형 농장일수록 ASF와 같은 전염성 질병의 위험이 있을 때 더욱 철저한 방역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2017년 살충제 성분 검출 달걀 파동 역시 동물복지형 농장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은 양계장에서 진드기 같은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방형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금류들은 이러한 진드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내 기생충, 살모넬라나 캄필로박터균과 같은 해로운 미생물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가금류에서 콕시듐의 원인이 되는 원생 기생충은 조류가 사육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동안 백신으로 예방했지만 최근 유럽 등에서 가금류에 대한 백신 사용이 금지되고 있어 특히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더욱 위협이 될 수 있다. 

결국 동물복지형 농장이 지속가능하려면 방역체계를 강화하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 개별 농가뿐 아니라 지역과 국가 모든 단계에서 방역체계가 허술해서는 안된다. 농가 내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을 통제하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위험요소들을 전방위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동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장=자유·평등·인권 등 우리 사회에는 그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단어가 있다. 그중 요즘은 ‘복지(福祉·welfare)’라는 단어가 눈에 자주 띈다.

복지의 사전적 정의는 ‘행복한 삶’으로 짧으나 복지의 실체는 분명치 않다.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사회적 공감대에 기반해 그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치관에 따라 동물복지(animal welfare)를 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특히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농장동물)에 대한 복지는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차피 인간의 식량이 될 동물에게 복지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농장동물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농장동물의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거는 세가지다.

첫째, 상대적으로 짧은 삶일지라도 농장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그 본래의 습성에 맞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해 우리 인간이 갖춰야 할 예의이자 도리라는 것이다. 즉 인도적인 차원에서 농장동물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이 농장동물을 가족과 같이 여겼다는 여러가지 일화나 유목민들이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이 돌보던 농장동물을 죽일 땐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죽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판단된다.

둘째,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농장동물로부터 유래한 축산물이 인간의 신체에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연구와 분석의 축적으로 검증돼야 할 명제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설득력을 얻고 있는 논거는 농장동물을 보다 넓은 공간에서 고통과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키워야 축산업이 우리 환경에 미치는 부하(負荷)를 줄이고 가축질병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농장동물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몇년 전부터 농장동물의 복지 향상을 주요 정책과제 중 하나로 삼아 제도개선을 추진해왔다. 또 관행 축산보다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를 달성한 농장에 대한 인증제를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이듬해부터는 동물복지 도축장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농장동물 복지 제고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가축 질병 등이 덜 발생하도록 전체 축산업에 적용되는 사육 기준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농가 실태조사, 선진국 사례 검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실현가능한 방안을 도출해낼 예정이다. 더불어 우리 축산농가가 새로운 사육 기준을 잘 이행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할 것이다.

<농민신문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