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축산의 길, 이것만은 해결하자] 4조 투입해도 효과없는 방역, 정부·농가 모두의 책임

[2018 신년기획] 선진축산의 길, 이것만은 해결하자(2)가축전염병

고병원성 AI·구제역에 17년간 혈세 4조4000억 투입

잇따른 대책에도 지난해 11월 전북 고창에서 AI 발생

휴지기제 대상 범위 확대…철새 예찰활동 강화해야

“자발적 신고 농가에 보상금 전액 지원” 목소리도


악성 가축전염병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은 국내 축산업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골칫거리다.

2000년 이후 17년간 AI·구제역 대응에 들어간 혈세만 해도 모두 4조4000억원에 달한다. 매년 평균 26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이 들어간 셈이다. 특히 2016~2017년 겨울에 발생한 사상 최악의 AI는 가금산업을 붕괴 직전까지 내몰며 막대한 피해를 줬다. 방역당국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농가의 안이한 방역의식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방역당국은 2017년 “AI의 근원적인 해결방안을 수립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존 방역대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에도 여전히 AI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축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악성 가축전염병 발생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전문가들은 “악성 가축전염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역시스템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역대책 실효성 여부가 관건=방역당국은 지난해 9월 사상 최악의 AI를 겪은 뒤 ‘AI 방역 종합대책’을 내놨다. 연중 상시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평상시 방역강화로 질병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겨울철 가금류 사육을 제한하는 휴지기제도 포함됐다.

문제는 실효성 여부다. 지난해 11월 AI가 발생한 전북 고창 가금농장이 철새도래지인 동림저수지 인근에 있는 데도 휴지기제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방역당국은 당시 3년간 AI가 2회 이상 발생한 농장과 그 인근 500m 이내 농장으로 한정해 대상을 정했다. 한 전문가는 “과거 발생이력을 토대로 위험도를 판단한 것은 통계에만 의존한 주먹구구식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호남의 오리농장을 중심으로 번지던 이번 고병원성 AI가 1월 초 경기 포천의 닭 사육농가로 옮겨간 것도 문제였다. 포천은 2016년 10월 20여농장에서 AI가 발생했을 정도로 위험지역이다. 한 역학 전문가는 “AI가 수도권까지 넘어갔다는 것은 방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계열화업체·농가 방역의식 높여야=계열화업체와 농가의 안이한 방역의식도 문제다. 이번 AI는 전체 14건 중 12건이 계열화업체 관련 농장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출하를 앞두고 있는 농장에 계열화업체 영업사원이 개인 방역수칙을 어기고 무단으로 방문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또 일부 축산농가들은 AI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가축방역관의 조사를 꺼리는 등 방역당국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농가단위의 차단방역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방역조직 확충 필요=방역당국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내 방역정책국을 별도로 신설했다. 종전 2개과 18명이던 방역인력도 방역정책과·구제역방역과·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3개과 40여명으로 갑절 이상 늘렸다.

한 수의 전문가는 “축산업 진흥과 방역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던 축산정책국 산하에 있을 때와 견줘 방역여건은 나아졌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방역당국과 손발을 맞춰 현장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방역업계에 따르면 지자체의 가축방역관 정원은 2016년 말 기준 1068명이지만 가축전염병에 초동 대처하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축산단체의 한 관계자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6월 전국 지자체에 방역관 350명을 충원하라고 했지만 이 역시 발 빠른 대처를 하기 위한 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찰활동 보완 중요=철새 분변과 농장에서 AI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예찰활동도 보완해야 한다. 철새 분변의 예찰활동은 그동안 AI 바이러스를 제때 검출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또 농장 예찰활동 역시 시료 채취자들이 여러곳을 동시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농장 내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농장주 또는 관리인이 채취해준 시료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영호 반석가금진료연구소장은 “국제 공조를 통한 철새 예찰활동으로 AI 바이러스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예찰팀의 농장 내 시료 채취활동 보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살처분 보상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살처분 보상금 100% 지원 대상을 현재 시·군별로 ‘처음 신고한 농가’에서 ‘자발적 신고농가’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의심신고가 제때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밖에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효율적 방역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밀집사육 개선과 백신정책 방향 등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농민신문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