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전문인력 확충 ‘공감’…‘농가 책임 강화’엔 이견
국회 농해수위 ‘AI 및 구제역 대응체계 개편’ 공청회
발생원인 등 농가에만 책임? - 정부안, 농가 책임만 강조 문제 살처분 보상금 감액기준 논란
턱없이 부족한 방역 전문인력 - 지자체 수의직 업무많아 기피 가축 전담인력 체계적 확충을
오리산업 전반 재검토를 - 서해안 사육 집중…분산해야 한번에 입식·출하 검토 필요

정부가 마련 중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대책이 농가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AI로 큰 피해를 당한 오리산업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김영춘)는 22일 국회에서 ‘AI 및 구제역 대응체계 개편 관련 공청회’를 개최하고 방역당국과 학계·생산자단체·지방자치단체로부터 현행 방역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사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평시 방역 강화 ▲해외 발생 조기 감지와 전파로 방역 대응력 제고 ▲국내 발생 때 초동대응 강화 및 조기 종식 ▲방역시스템 효율화 4대 분야에 대한 대책안을 발표했다.


◆AI 발생, 농가 탓?=농식품부가 내놓은 대책안이 농가 탓만 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은 “가축질병 발생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AI는 철새가 원인인 것이 명백한데도 대책안의 세부사항은 농가의 책임만 강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농가들의 책임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살처분보상금 감액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논란이 됐다.

같은 당 김현권 의원(비례대표)은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살처분에 들어갔을 때 보상금을 80%만 주는 국가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벌을 강화하면 농가들의 신고지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자진신고하는 농가에겐 보상금을 100% 지급하고, 방역상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을 땐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삼진아웃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제도는 AI가 5년 이내에 3번 연속 발생한 농가는 가축을 아예 키우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은 “삼진아웃제는 농가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로, 도입 여부와 관련해선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AI가 4번이나 발생한 농가가 있다”면서 “이런 농가가 가축을 계속 사육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패널티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 제도도 만들어 방역을 잘하는 농가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방역 전문인력 보강’에 공감대 형성=공청회 참석자들은 방역 전문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강승구 전북도 농축수산식품국장은 “시·군 방역 담당자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 수의직 공무원 임용시험에 지원자가 없을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강 국장에 따르면 수의직 공무원 모집을 공고한 전북의 9개 시·군 가운데 7곳은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2곳은 채용했지만 합격자가 곧바로 이직했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대 교수도 “일본은 중앙조직에 수의사로 구성된 방역 담당자가 44명이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20명 남짓이며, 이 가운데 수의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으로 대다수 수의사들이 산업동물보다 반려동물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수의사들이 산업동물을 선택해 방역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는 동시에 학생 때부터 가축 전문 수의사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김영춘 위원장은 “산업동물 수의사 면허를 별도로 만들어 방역 전문인력으로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농식품부에 제안했다.

모 교수는 “현재 미국은 수의대 학부 때부터 정원의 20% 정도를 산업동물 수의사로 따로 양성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수의사가 학교를 졸업하면 농촌현장으로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육성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흔들리는 오리산업, 대책은?=오리산업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번 AI 사태에서 발생농장 371곳 가운데 오리농장은 모두 154곳(육용오리 120·종오리 34)으로 전체의 47%에 달한다.

모 교수는 “오리는 닭에 비해 임상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폐사도 적다”고 설명했다. 오리는 AI에 치명상을 입지 않는 대신 체내에서 바이러스를 증식시켜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모 교수는 이어 “서해안 벨트에서 AI가 발생하는 이유는 철새 탓만이 아니라 오리농장이 주로 이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오리 사육농가 중 90%가 서해안지역에 밀집돼 있다.

손영호 반석가금진료연구소장도 “AI 발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오리산업의 재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소장은 이를 위해 철저한 ‘올인올아웃’ 실시를 제안했다. 축사 안에 가축을 한꺼번에 입식하고 출하하는 이 방법은 외부 차량의 접근 횟수를 줄여주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농장 내로 유입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영천·청도)은 “서해안에 밀집된 오리농장을 어떻게 하면 동쪽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농민신문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