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축방역세’ 도입 시동…축산농가 반발
농가에서 일정금액 걷어 가축질병 방역·살처분비 활용
농경연 용역연구로 ‘윤곽’ 돼지, 연 최대 6415만원 달해
정부·지자체, 신설 찬성 “재정난 덜고 방역의식 높여”
농가, 질병책임 떠넘겨 불만 방역 소홀 ‘역효과’ 우려도

정부가 ‘가축방역세(가칭)’ 도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평상시 축산농가들로부터 일정 비율의 세금을 ‘가축방역세’로 걷어 가축질병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매몰 비용, 보상금 등 방역비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올해 1월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정부에 건의하면서 축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서울 서초구 제2축산회관에서 업무협의회를 열고 축산단체·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과 가축방역세 도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농가당 최고 6415만원 방역세 내야=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식품부의 의뢰로 방역세를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추정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농경연은 구체적 시행 방안으로 두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가축을 도축하거나 달걀과 원유를 출하할 때 시가의 1%를 세율로 매기는 방식이다. 1%는 2011년 폐지된 도축세에 부과했던 세율과 같다.

연구에 따르면 이 방안으로 방역세를 걷을 경우 2016년 기준 세수가 176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축종별 세수는 한육우 447억원, 젖소 222억원, 돼지 677억원, 육계 199억원, 산란계 156억원, 오리 62억원이다.

이때 한 농가가 연간 내야 하는 평균 방역세를 추정하면 한육우 50만원, 젖소 414만원, 돼지 1480만원, 육계 1221만원, 산란계 1475만원, 오리 1092만원에 이른다.

물론 사육규모에 따라 금액은 조금씩 달라진다. 한우를 예로 들면 50마리 미만 사육농가는 연간 평균 21만원, 50~100마리 미만은 117만원, 100마리 이상은 315만원 수준의 방역세를 납부할 것으로 농경연은 내다봤다<표 참조>. 이렇게 되면 축종과 사육규모에 따라 축산농가는 최소 21만원(한육우 50마리 미만)~최대 6415만원(돼지 5000마리 이상)의 방역세를 내야 한다.

두번째 방안은 상시 사육마릿수를 기준으로 방역세를 걷는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2016년 기준 방역세는 모두 1659억원에 이른다. 축종별로는 한육우 501억원, 젖소 84억원, 돼지 606억원, 육계 154억원, 산란계 244억원, 오리 70억원이다.


◆정부·지자체 “농가가 방역세 수혜자 될 것”=방역세를 신설하면 지자체의 방역활동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게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현재 재정자립도가 낮거나 악성 가축질병 발생농가가 많은 지자체는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충북도가 대표적이다. 충북에선 2016년 11월부터 올해 3월8일까지 108개 농장의 가금류 319만마리와 14개 농장의 소 986마리를 살처분했다. 이에 따른 살처분 보상금만 300여억원에 이른다.

도 관계자는 “진천·보은은 일년치 예산 가운데 재난안전관리비와 예비비까지 모두 다 쓰고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방역세를 신설하면 지자체 부담은 감소하고 걷은 세금은 농가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환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역세를 걷으면 농가들의 방역의식이 강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비용을 지불한 만큼 농가들이 방역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겠냐는 얘기다.

이와 함께 축사시설 현대화처럼 축산환경을 개선하는 재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축산업이 한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명철 농식품부 축산정책과장은 “국민들은 축산물은 좋아하지만 축산업엔 반감을 갖고 있다”면서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축산업으로 변화하려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완벽한 방역시설을 갖추는 쪽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역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농가 “방역세는 책임 떠넘기기”=축산단체들은 방역세 도입을 반대하고 나섰다. 가축질병은 국가적인 재난상황인데도 발생 책임을 농가에게 묻는다는 이유에서다.

문정진 한국토종닭협회 부회장은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는 제대로 대응했는지 의문”이라며 “국비를 늘려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야지 세금을 따로 걷는다는 것은 가축질병 발생에 대한 책임을 농가에게만 떠넘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방역세 도입 절차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축산 관계자도 있었다. 농가들의 의견을 묻기도 전에 이미 세부적인 방안까지 모두 다 준비한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황엽 전국한우협회 전무는 “세금을 걷는 것은 정서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사전에 농가들과 충분히 논의했어야 했다”며 “방역세의 효과가 아무리 좋게 나타난다고 해도 농가들은 엄청난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현 한국오리협회 전무도 “꼭 필요하다면 방역세 도입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지금 상황을 수습한 뒤 소통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입 후 역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농가들이 세금을 냈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방역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방역세를 걷으면 농가들이 방역을 더욱 잘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농민신문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