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대응·신고철저·철통방역 ‘3박자’ 척척
농식품부 ‘일본 AI 방역체계’ 현장조사 결과
총리가 범정부 대응 진두지휘 살처분 규모 114만마리 그쳐 발생 없어도 폐사율 정기보고
중앙·지방 방역조직 탄탄 전문인력 한국의 2~3배
농가 방역, 개선때까지 재점검 비상시 대비 긴급백신도 확보

‘3203만마리’ 대 ‘114만마리’. 우리나라와 일본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살처분한 가금류 마릿수다.

AI가 두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지만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28배 이상 큰 피해를 입은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가 AI 피해를 되풀이하는 동안 일본은 2001년 광우병(BSE) 발생 이후부터 확고한 방역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늑장대응과 허술한 방역체계로 ‘소를 잃고도 외양간마저 못 고쳤다’는 질책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19일 발표한 ‘일본 AI 방역체계 현지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 6일간 일본 농림수산성과 아오모리현·양계협회 등을 방문해 ‘일본 AI 방역제도 전반’을 조사했다.

관계전문가들은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AI 사태를 계기로 일본의 방역제도를 참고삼아 우리의 방역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①AI 발생 시 정부 대응체계

일본이 AI 피해를 줄인 가장 큰 배경은 한박자 빠른 정부의 대응이 거론된다. 일본은 AI가 발생하면 바로 총리대신을 본부장으로, 내각관방대신·농림수산대신을 부본부장으로 하는 ‘AI 대응본부’를 설치·운영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28일 아오모리현에서 AI가 발생하자 2시간 만에 아베 총리가 관계 각료회의를 즉시 열고 진두지휘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농가 최초 신고 이후 한달 가까이 돼서야 범정부 차원의 AI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게다가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 위기경보별로 대응을 달리하다 보니 AI 발생 한달이 지나서야 ‘심각’ 단계로 격상해 늑장대응이란 비판까지 받았다. 대응속도가 일본보다 한참 뒤처진 것이다.


②신고체계

신고체계도 우리와 달랐다. 이상 증상 등 질병 발견 때에만 신고하게 돼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경우 농가들이 가축보건위생소에 정기적으로 폐사율을 보고하고,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별도로 신고하게 돼 있다. AI 검사방식도 차이가 난다. 일본은 농장 단위 AI 간이키트 검사를 할 때 농가와 일반 수의사도 사용이 가능해 AI 감염 여부에 대해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검역본부와 시·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만 AI 간이키트를 사용하고 있다.


③사육환경 

가금류 사육환경 차이도 컸다. 일본의 닭·오리 사육마릿수는 3억1000만마리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많은데다 국토 면적도 4배가량 넓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대규모 사육단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사육밀도가 낮다는 얘기다. 일본 아오모리현에선 AI 발생농가 주변 10㎞ 이내에 있는 농가수가 고작 7곳에 불과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경우 410곳, 충북 음성군 맹동면은 207곳에 달했다.

또 ‘AI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리 마릿수도 일본은 우리나라(877만마리)의 5.7%(50만마리)에 그쳤다. 오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배설물 등을 통해 바이러스를 대량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식품부는 “가금류 사육환경과 산업구조 차이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AI 방역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④방역 인프라

방역조직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소비안전국 동물방역과(45명), 동물 검역소(416명), 동물위생연구소(369명), 동물의약품검사소(79명) 등 중앙정부의 방역 관련 담당인력이 900명을 웃돌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농식품부 방역총괄과·방역관리과, 검역본부 등을 합쳐 446명에 그친다.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인력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수의사만 현당 44명으로, 모두 2000명이 넘는다. 660명인 우리나라의 3배를 넘는 규모다. 심지어 국내 지자체 중 70개 시·군·구에는 방역업무를 총괄하는 수의사가 아예 없다.


⑤농가 책임방역 의식 등

농가 단위의 책임방역이 이뤄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일본은 가축질병 사전예방 강화를 위해 2004년 법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재평가와 보완을 실시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일본은 법에 농장 단위에서 해야 할 일을 명확히 명시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이행 여부를 공개하는 등 확실히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행하지 않으면 개선될 때까지 확인하는 구조다. 일본 농가들이 스스로 개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일본은 AI 급속 확산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H5N1형 백신 410만마리분을 비축 중이다. 하지만 백신은 AI 확산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비책 수준으로, 평상시엔 백신 사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농식품부는 이번 방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AI 방역체계 개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농민신문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