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피해 축사 가보니
분뇨섞인 흙탕물 들어차 ‘참담’
살아남은 소들도 살 크게 빠져
“영양제와 방역·소독 지원 시급”
산사태로 전봇대 무너져 정전
인근 배수로 점검·확보 절실
“산청에서 빗물에 떠내려간 소가 30㎞ 떨어진 진주 남강댐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고예.”
수마가 휩쓸고 간 경남 산청 축산농가의 상흔은 깊었다. 22일 찾은 산청군 신안면 청현마을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사흘 전(19일) 폭우로 둑이 무너지면서 강물이 마을을 덮쳤다. 일부 소가 시설하우스 구조물에 깔렸고 담근먹이(사일리지)는 비닐이 터진 채 흙탕물에 나뒹굴었다. 농가와 방역차가 바삐 오가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진동하는 가축분뇨 냄새와 물 비린내를 막을 순 없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6일부터 20일 오후 5시까지 산청지역의 누적 강수량은 793.5㎜로 집계됐다. 기상청이 공개한 기후평년값에 따르면 산청의 1991∼2020년 연평균 강수량은 1556.2㎜다. 1년간 내릴 비의 절반이 5일간 쏟아진 것이다. 산청군은 19일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다.
동행한 박종호 경남 함양산청축협 조합장은 마을 입구에서 발길을 멈추고선 “이 도로에만 소 20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23일 오전 기준 축협 조합원의 한우 176마리, 닭 4만4000마리, 메추리 4만마리, 꿀벌 600봉군(벌무리)이 폐사했다. 농가 47곳의 축사시설 피해도 잇따랐다.
전국적으론 22일 기준 닭 147만9340마리, 오리 15만1100마리, 메추리 15만마리, 소 864마리, 돼지 775마리, 염소 223마리, 꿀벌 2391봉군 등 모두 178만4691마리가 폐사했다고 농림축산식품부는 밝혔다.
청현마을 한우농가 성환생씨(76)는 한우 76마리 중 14마리를 잃었다. 그의 축사는 갯벌을 방불케 했다. 우방 안은 분뇨가 섞인 흙탕물이 흥건했고 뿌리째 뽑힌 나무 덤불도 있었다. 성씨는 박 조합장과 함께 축사 복구를 위해 우방 칸막이를 옮기며 소들을 작은 공간에 몰아넣었다. 두 사람이 디딜 때마다 다리가 푹푹 빠졌고, 이들 종아리 높이까지 물이 고였다.
축협 직원들과 농가들은 바삐 오가며 복구 작업에 힘을 보탰다. 농협사료 경남지사·울산지사, 부산바이오 임직원도 함께했다. 한 농가는 “30여㎞ 떨어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서부터 트랙터를 몰고 왔다”고 했다. 성씨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다행”이라며 연신 고마워했다.
이어 도보 15분 거리의 또 다른 한우농가인 김모씨(63)는 한우 60여마리를 사육한다. 그는 “살아남은 소들도 살이 크게 빠져서 제값 받고 팔긴 어려울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차로 5분 남짓 되는 곳에 있는 한우농가 이동철씨(48)도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송아지를 포함해 한우 120마리를 키웠지만 이번 비로 50마리를 잃었다. 소들이 우방 칸막이에 다리가 걸린 채 죽어 있었다. 김씨는 “마릿수가 많아 보험료 부담으로 가축재해보험 가입을 미뤘는데 후회가 크다”면서 “영양제와 방역·소독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화로 연락이 닿은 가금농가도 절망한 목소리였다. 산청읍 병정리에서 육계를 키우는 박준섭씨(56)는 “산사태로 축사 근처 전봇대가 무너지면서 정전 피해를 봤다”며 “자동 급이기와 온습도 조절기가 멈췄고 계사 안 온도가 치솟으면서 출하를 3일 앞둔 닭 4만마리 중 2만마리가 폐사했다”고 했다. 박씨는 “악취 우려 탓에 축사 대부분이 산자락에 있다 보니 산사태 피해를 크게 봤다”며 “축사 인근 배수로를 점검·확보해달라”고 목소리를 키웠다.
성한경 전 한국후계농업경영인 경남연합회장은 “호우 속에 돌 굴러가는 소리가 꼭 천둥처럼 느껴졌다”면서 “농가들이 정신적 충격을 오래 겪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와 정치권이 실질적인 복구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농민신문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