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조기대선을 앞두고 축산업계가 속속 ‘21대 대통령 선거 요구 공약’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육계업계가 법률에 근거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직권으로 수급조절을 논의·심의·의결할 수 있는 기구 설립을 대선 공약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고병원성 AI 발생으로 인해
매번 공급량 부족·과잉 반복
업계 간 ‘수급 논의’ 불가피한데
공정위 ‘담합’이라며 과징금 부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매번 공급량 부족과 과잉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수급 조절을 위한 업계 간 논의가 필수불가결한데도 불구하고 2022년 3월과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며 계열업체들과 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육계협회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검찰에 고발조치하면서 논의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의 고발 후 업체 관계자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된 상황이어서 ‘수급 불균형·가격 불안정’이라는 산업적 특성을 가진 육계 계열업체는 물론, 계약을 통해 닭을 사육하고 있는 육계농가에도 치명적인 상황이다. 90% 넘게 계열화가 진행된 육계산업의 특성상 계열주체의 경영상황이 어려워지면 계약사육농가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닭의 출하일령 30일 남짓
단기·신속 수급조절 필요 불구
생산조정 결정만 최대 80일
논의 기간 1.6회~2.6회 출하
#단기간 내 수급 조절 필요
지난 3월, 이원택 더불어민주당(군산·김제·부안) 의원이 추진한 ‘찾아가는 농어업 민생탐방’에서 한국육계협회가 이원택 의원에게 전달한 건의문건 첫 머리에는 육계 수급조절을 위한 조치로 축산법을 개정해 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해당 문건에서 한국육계협회는 육계산업에 대해 ‘수급이 불균형하고 가격이 불안정한 산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다 만성적인 공급과잉으로 계열화사업자의 수익성이 타 산업분야에 비해 낮은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특성상 단기간 신속한 수급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급조절 이행 절차의 간소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단기간 신속한 수급조절이 필요한 이유. 거세우를 기준으로 2년 6개월가량을 키우는 한우나 출하일령이 평균 195일가량인 돼지와는 달리 닭의 출하일령은 30일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 때문이다.
현행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계열화사업법)에도 과잉생산이 예측될 경우 수급조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은 있다. 계열화사업법 제 5조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계열화사업자 또는 생산자단체 등의 요청에 더해 과잉생산이 예측될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계열화사업자가 공동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지역의 해당 가축 또는 축산물의 생산조정 또는 출하조절을 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
#그러나…
문제는 생산조정을 결정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생산자 등이 생산조정 또는 출하조절을 요청하려는 경우에는 요청서를 작성해 이해관계인·유통전문가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후 해당 축산물의 생산자등의 대표나 해당 생산자등의 재적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또는 해당 가축 3분의 2 이상을 사육하거나 생산하는 생산자 등의 찬성을 받아야 하고, 이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결과 회신에 더해 공정위와의 협의도 거쳐야 한다.
지난 2021년 8월 한국축산경제연구소가 내놓은 ‘가금산업 수급안정을 위한 제도 보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 데만 △수급조절요청서 작성=2일 △이해관계인 및 유통전문가 의견수렴=5일 △생산자 동의=5일 △수급조절요청서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결과 회신=10일 △공정위 협의(공동행위인가)=30일로 최소 50일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됐다. 만약 공시기간이 연장될 경우 30일이 또 추가된다.
최소 50일에서 최대 80일이나 걸린다는 것인데, 이렇게 수급조절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논의하는 사이에 육계농장에서는 닭이 최소 1.6회에서 2.6회 출하된다. 지난해 육계 도축마릿수가 7억7945만마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억392만여마리·최대 1억6888만여마리가 수급조절 논의 과정 중에 시장에 나온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종계·종란 감축 조건 사료 지원
닭고기수급조절협의회 운영 등
수급 관련 정부 관여 여럿 확인
#업체간 논의도 불가능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종계 마릿수 감축에 대해 담합을 했다며 종계 4사에, 2022년 3월과 4월 각각 육계 신선육 판매가격·생산량·출고량 및 육계 생계 구매량을 계열업체들이 담합했고 이같은 행위가 계열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육계협회에서 이뤄졌다며 업체와 협회를 대상으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90% 넘게 계열화가 된 육계는 출하주기가 짧고 단기간 내 수급조절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업계 간 논의가 있어 왔고, 정부차원에서도 수급조절이 이뤄졌다. 하지만 공정위가 담합 결정을 내린 후 수급과 관련한 업계 간 논의는 물론, 관계자들 간의 모임도 실종된 상황”이라면서 “출하일령이 짧은 닭 사육 특성에 따라 단기간 수급조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계 간 논의는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담합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공정위는 정부의 관여도 없었다고 했다. 사실일까? 정부가 참여한 수급조절의 대표적인 예는 2013년 이뤄진 종계 감축이다. 하지만 2019년 공정위는 ‘2013년 2월, 종계과잉공급으로 종계판매가격이 하락하자 원종계 수입량을 약 23% 감소시키기로 합의했다’며 종계 4사에 담합행위에 따른 과징금 3억2600만원을 부과했었다.
업계는 실제 업계 간 종계 가격을 올리기 위한 목적의 행위가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이유는 이렇다. 당시 진행된 종계 감축은 대한양계협회와 한국계육협회(현 한국육계협회)간 논의를 거쳐 건의사항으로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됐던 건으로, 2013년 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받아들여 종계를 적정수준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승인한 바 있다.
정부의 관여는 같은 해 진행된 사료구매자금 지원에서도 흔적이 나타난다. 같은 해 5월 축산농가 경영부담을 경감하는 차원에서 특별사료자금 1조3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는 지원의 단서조항으로 육용종계장의 경우 종계·종란 감축을 완료한 경우에만 지원한다고 못 박았던 것.
닭고기 수급과 관련된 정부의 관여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육계공급량 감소에 따라 지난 2023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연 닭고기수급조절협의회에선 계열업체에 종란 수입과 사육마릿수 확대를 위한 계열화사업자금 8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면서 입식량을 늘릴 것을 계열업체들에게 요구한 바 있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닭고기수급조절협의회는 △수급상황 분석 △수급상황별 대응 방안 △수급안정 대책 추진 △산업발전 방안 등에 관한 사항을 논의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자문기구로서 2013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주요 먹거리 중 하나인 닭고기에 대해 정부가 정책수단을 동원해 직·간접적으로 수급조절에 관여해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터뷰/권정오 한국육계협회 상무
“축산법·계열화법 반드시 개정 필요”
“현행 축산법과 계열화법에도 수급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축산법에는 수급조절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고, 계열화법에도 사업자나 생산자단체가 요청할 경우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생산이나 출하조정을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축산법 상 수급조절협의회의 주요 기능은 자문 정도이고, 계열화법 상 생산·출하조정도 결정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서 육계산업에서는 효용성이 떨어집니다.” 권정오 한국육계협회 상무의 말이다.
권 상무는 “이에 따라 출하일령이 평균 30여일 남짓인 육계의 특성을 반영해 수급조절을 하기 위해서는 단기간 결정이 가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수급조절을 심의·의결할 수 있는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축산법을 개정하거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장관 직권의 수급위원회 구성을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 육계업계 요구 공약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축산법 상 수급조절협의회를 통해 관련 논의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업계에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수급조절 논의인데 협의회의 경우 자문이 주요 기능이고, 입식량을 늘려 가격을 낮추자는 논의가 주”라면서 “공급량이 적은 경우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혹은 과잉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도 수급조절을 심의하고 결정할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권정오 상무는 “공정위의 담합 결정 후 실질적인 수급조절 논의가 실종된 상황인데, 공급 과잉과 부족을 반복해 온 육계산업의 특성상 이대로 가다간 업계의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면서 재차 실질적이고 단기간에 수급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축산법 등에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정거래법 제116조에 따르면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령에 따라 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돼 있다. <끝>
<한국농어민신문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