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이란 이름 아래 수입 축산물의 관세를 철폐한 건 수입 대란에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 축산농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11일 오후 1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으로 전국 각지에서 온 축산농가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수입 축산물 무관세 정책을 규탄하는 ‘축산 생존권 사수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고자 농장 일을 잠시 미뤄두고 상경한 것이다. 이날 집회는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소속 생산자단체로 구성된 ‘축산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원장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가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우·양돈·낙농·산란계·육계·토종닭·오리·양봉·경주마를 생산하는 축산농가 6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수입 축산물 무관세조치 즉각 철회하라’ ‘실효성 있는 사료값 대책 즉각 마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건 지난 7월8일 정부가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으로 주요 축산물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대상과 물량을 증량하기로 하면서다. 해당 조치는 지난달 20일부터 시행됐고 연말까지 외국산 쇠고기 10만t, 닭고기 8만2500t, 돼지고기 7만t, 분유류 1만t이 무관세로 들어오게 된다.
정부의 도입 취지와는 달리 해당 조치 이후 외국산 축산물은 평균 4%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한우고기값은 평균 8%가 떨어지는 등 국내산 축산물 가격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게다가 최근 2년간 국제 곡물값 상승으로 사료값이 30%나 오르면서 농가 부담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삼주 비대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 정책이 소비자에게 아무런 혜택도 없고 국내 축산업만 죽이는 잘못된 정책이란 게 입증됐다”면서 “즉각 해당 정책을 철회하고 높은 사료값에 고통받는 축산농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 의원, 윤준병(전북 정읍·고창) 의원도 참석했다. 윤준병 의원은 “할당관세 적용문제나 사료값 문제 등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 신세경 한국농식품여성CEO연합회장, 윤흥배 한국가축인공수정사협회장도 참석해 축산농가들과 뜻을 함께했다.
각 생산자단체장의 규탄발언과 문화공연에 이어 ‘사료값’ ‘무관세’라고 적힌 얼음을 깨는 퍼포먼스가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이후 농가들은 서울역에서 출발해 용산 대통령실이 인접한 삼각지역까지 행진했다. 행진을 하는 동안 다양한 축산농가들의 거리연설도 이어졌다. 한 군납농가는 “최저가 경쟁입찰을 도입해 군장병에 외국산 축산물을 먹이는 국방부의 군급식 대책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적살처분으로 돼지를 묻어야 했던 한 양돈농가는 “사료값이 과거 대비 1㎏당 300원이나 오르면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라면서 “정부가 농가를 살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쳤다.
비대위는 ▲수입 축산물 무관세 즉각 철회 ▲사료값 안정 위한 특별 대책 수립 ▲수입 무관세 축산물 유통정보 공개 ▲국방부 군급식 경쟁입찰 즉각 철회 등이 담긴 결의문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한편, 이날 총궐기대회에선 8∼10일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한 모금활동도 함께 전개됐다.
박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