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토종닭으로 지역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경북 청송 지역축협 사업장을 다녀왔다. 사업을 책임지는 지인으로부터 방문해달라는 말을 듣고도 세상사에 관여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미뤄왔지만 닭과 함께 TV를 시청하는 그의 사진을 보고 길을 나서게 됐다. 흔히 농촌을 살린다면서 없는 예산에 용처도 불확실한 건물 혹은 다릿발을 세우거나 외지인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돈을 쓴 만큼 성과를 얻었다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지역 공직자가 토종닭 달걀로 노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고심하고 있다니 이야기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사업 구상인즉 지역축협이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에서 개발한 토종닭 종란을 부화시켜 농가에 분양하고 유정란을 생산, 농협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약 430㎡(130평) 규모 축사와 운동장을 갖춘 사육시설을 설치하면 토종닭 2000여마리를 동물복지형으로 키울 수 있는데, 유정란을 생산하면 월 3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사료 급여 등 대부분 작업은 자동화시설에 맡기면 되고 시설 설치에 드는 약 5000만원은 80%까지 장기 저리로 융자해주면 되니 고령층과 부녀자, 청년 창업농, 귀농자도 큰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자연방사로 키운 토종닭은 일반 산란계와 견줘 사료 섭취량이 많고 산란율은 낮기 때문에 생산비가 많이 든다. 사업 타당성을 미심쩍어 하는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인근 영양지역에서 240㎡(72평) 규모 축사 8동에 8000여마리 재래종 토종닭을 사육하는 농장으로 안내했다. 계사에 톱밥과 조사료를 깔아주고 유산균·효모균 등 생균제를 쓰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생산한 유정란은 전량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납품하기 때문에 판로 문제도 없었다. 알 크기는 작지만 유백색에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서너배 비싼 값에도 잘 팔린단다. 깨끗한 환경에서 동물복지를 고려한 토종닭 유정란이 명품 대접을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출산·고령화로 농촌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60세 이상인 농가 경영주가 77.3%나 되는데 40세 미만은 겨우 0.8%에 불과하다. 젊은 농업인을 불러들이려고 스마트팜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농지를 구하기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토종닭사업은 분명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한적한 곳에 방역과 오폐수 처리시설을 갖춘 축산단지를 조성하고 청년들에게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방안, 생산된 유정란을 브랜드 상품화해 유통하고 가축분뇨는 경축순환농업으로 활용하는 방안, 늙은 닭은 백숙·닭불고기·닭갈비·육회 등 다양한 닭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닭고기전문음식센터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는 지방소멸 문제에 대응하려고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을 강화하고 인구감소지역을 지원한다며 매년 1조원씩 10년간 투자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사업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122개 지자체가 신청한 811건, 1조3598억원 규모의 사업을 심사해 기금예산 7500억원을 배분한다. 이제까지 하드웨어 중심의 획일적인 중앙정부사업과 달리 지자체가 수립한 계획안을 평가해 차등적으로 지원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지역 자원과 특성을 고려해 실효성 있는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송 지역축협의 토종닭 유정란 구상이 이 사업에 응모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역 특성을 살린 사업을 발굴해 안정된 소득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자기 일도 아닌 사업을 위해 애를 쓰는 마음은 용역업체가 보기 좋게 포장한 어떤 계획서보다 가슴에 와닿았다.
이동필(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민신문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