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묶였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여 만에 대부분 풀렸지만 그 이전부터 계속돼 온 가축 전염병은 여전히 정부의 강한 통제 속에 농가를 꽁꽁 묶고 있다. 2019년 9월 첫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그동안 농가 발생이 21곳에 그쳤지만 3년 가까이 심각 단계는 풀지 않은 채 수시로 이동 제한이나 사료 환적 등을 걸며 장벽을 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는 겨울철 가금 농가에 불청객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겨울부터 진행된 오리 사육제한, 일명 오리 휴지기 시행이 5년 지나며 오리 농가와 계열업체에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양계 농가들도 백신 등의 대책 없이 가하는 규제에 설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5년간 휴지기 직격탄을 맞은 오리 농가 방문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풀어야 할 주요 축산 현안, ‘가축 방역’ 정책을 살펴봤다.
현장 오리 휴지기 5년, 쌓이는 농가·계열업체 피해
오리 농장은 어느 곳보다 진입하기 쉽지 않지만 요즘은 쉽게 진입할 수 있다. 휴지기 여파로 오리가 없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A지역 한 오리 농장
“1년 반 동안 딱 42일 키워”
휴지기 끝났지만 입식 기약 없어
정부 보상금 없는 계열업체
물량 줄어도 운영비는 그대로
“밑지는 장사 할 수밖에…”
“저 오리 농가 맞을까요. 1년 6개월 동안 딱 한 달여(42일) 오리 키웠습니다.”
지난 21일 찾은 충북 A지역의 한 오리 농장. 10여동의 오리 농장 입구엔 ‘방역상 출입 통제’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 뒤엔 방명록 등을 작성하는 통제소에다, 차량소독기 앞 ‘제차 서행’까지 알리며 진입을 상당히 까다롭게 했다. 하지만 이날 이곳은 다 ‘프리패스’였다. 겨울 휴지기가 끝나고 50일가량 지난 뒤였지만 지금은 물론 오리(병아리)가 입식될 기약도 없었기 때문이다.
‘충북’ 이하 지역명과 농장 규모,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고 본인에 대한 사진 촬영도 안 하기로 미리 확답한 뒤 만난 김기영 씨(가명)는 10여년간 오리 농사를 해오고 있고, 이 중 5년을 휴지기를 겪었다. 보통 오리는 42일 전후 출하를 해 1년에 5~6번 정도 입식이 이뤄진다. 하지만 그는 재작년 10월 이후 올해 4월 현재까지 18개월 중 딱 한 번, 42일만 오리를 길러 출하시켰다고 한다.
김기영 씨는 “재작년 겨울은 강제에 의해, 작년 겨울은 지자체 등에서의 휴지기 권유로 겨울철 4개월간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휴지기에 들어간 농가는 이후 병아리 입식 과정에서 뒤로 밀렸다”며 “휴지기와 살처분 등으로 종오리도 줄어 병아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 계열업체가 겨울 사육한 농가는 연중 다섯 번 정도 병아리를 맞춰줬지만 우리에겐 1년 동안 한 번 키울 수 있게 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계열업체들이 겨울철 물량 확보를 위해 농가에 휴지기를 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에 대한 페널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휴지기 정부 지원금은 줄어들고 있다. 김 씨는 “휴지기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줄어들었다. 재작년까진 평균 소득 대비 80%가 보상비로 책정됐지만 지난해엔 70%로 줄어들었다”며 “정부 정책에 맞춰 휴지기를 택하거나 지역에 따라 강제로 휴지기를 해야 하는 농가는 오리 사육만으론 생활이 너무 팍팍해졌다. 우리 역시 타 작목 농사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계열업체를 원망할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계열업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김 씨는 강조한다. 그는 “그래도 농가는 정부 보상금이라도 있지 않나. 그런데 계열업체들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며 “내가 납품하는 업체 역시 일주일에 60만수 정도를 취급해야 하지만 휴지기로 인해 겨울철엔 10만수 정도밖에 취급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량은 확연히 줄지만, 가동비나 인건비 등은 그대로라 계열업체들도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생체는 안 되겠지만 훈제나 가공용 등은 사육 물량이 많은 여름철에 비축해 겨울철 쓰면 되는데 업체들은 냉동보관비 지출에 따른 부담도 크기에 그렇게 못한다. 이런 비용이라도 정부에서 지원해주면 물가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코로나19로 피해 본 소상공인 지원 같은 효과도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김기영 씨는 새 정부에선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산업을 함께 키울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길 바라고 있다. 김 씨는 “오리의 경우 정부 통제가 상당히 강하다. 철새에 AI가 확진되면 저병원성인지 고병원성인지 알기도 전에 바로 10km 농장까지 이동제한을 걸기에 휴지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새 정부에선 단순히 규제 강화만으론 오리산업을 살리는 데 한계가 왔다는 점을 명확히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오리 농가들은 오리 입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리 농사만으론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오리 농장에 오리가 없어 차량 진입이 쉽게 이뤄진다.
AI·ASF 발생 현황
고병원성 AI 줄어들고 있지만
‘수년 주기→2년 연속’ 잦아져
ASF도 충북·경북 등으로 확산
전문가들 ‘전국 상재화’ 진단도
현재 국내 주요 가축전염병이자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질병은 고병원성 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다. 고병원성 AI는 매년 철새가 도래하는 시기인 겨울철 전후 닭·오리 등에 발생하고 있고, ASF는 야생멧돼지에서의 양성 확산 속에 전국적인 상재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중 고병원성 AI는 2003년 국내 첫 발생 이후 몇 년에 한 번씩 대규모 발생하고 있다가 최근 그 주기가 짧아졌다. 최근 10년간 가금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 동향을 보면 2014/2015년 38건, 2016/17년 383건, 2020/21년 109건, 2021/22년(4월 21일 현재) 47건의 고병원성 AI가 나왔다. 2016년 이후 발생 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수년 주기로 오던 고병원성 AI가 2년 연속 발생했다. 여기에 혈청유형도 2014년 이후 계속해서 H5N8형이 주를 이루다, 이번 시즌엔 2010년 이전 유행했던 H5N1형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9년 9월 국내에선 처음 발생한 ASF는 2022년 4월 21일 현재 양돈장에선 21건, 야생멧돼지에선 2541건이 발생했다. 발생 지역도 경기 북부와 강원도를 넘어 충북, 경북까지 확산됐고, 이제 전국 상재화로 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가축 방역 정책 다시 보자
과한 방역대·살처분 범위 손질…‘보상금 현실화’도 시급
“농가에 규제란 규제 다 해놓고
그에 대한 혜택은 거의 없어”
지자체마다 다른 정책 ‘일원화’
백신 도입 검토 등 목소리도
▲방역대·살처분 범위=축산 농가들은 가축 방역 정책이 너무 규제 위주로 흘러간다고 답답해한다. 특히 방역대 해지와 관련해 농가는 ‘최대한 빠름’을 원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최대한 늦게’를 선택한다. 이는 가축질병이 발생하지 않은 농가들 사이에선 상당한 부담이자 불만이다. 발생한 곳과 같은 방역대로 묶여 버리면 반경 km나 권역화에 따라 살처분을 비롯해 출하·입식 지연, 사료 환적 등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양계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초반엔 식당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바로 그 식당은 폐쇄되고 소독하지 않나. 그런데 그 인근 식당도 만약 같은 조치가 내려지면 어떨 것 같은가”라며 “지금 축산 농가들이 그런 상황이다. 방역대나 살처분 범위를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돈업계 관계자는 “멧돼지에서 ASF가 터지면 반경 10km 이내는 30일간 출하제한 등이 걸린다. 지금 ASF 양성 멧돼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지 않나, 그러면 전국 모든 농가가 언제든 30일간 출하제한이 걸릴 수 있다”며 “농가에선 거의 발생하지 않고, ASF는 공기 전파도 아닌 직접 접촉 전파인데, 너무 방역대나 살처분 범위가 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가엔 규제란 규제는 다 하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혜택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8대 방역시설을 갖춘 농가는 규제에서 예외를 둔다든지, 역학조사해서 문제가 있는 경우만 살처분 한다든지 등의 정책 유연성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동제한에 대한 현실화 목소리도 크다. 특히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오리업계에서 불만이 상당하다. 오리업계 관계자는 “농장 발생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철새에서 AI가 나오면 저병원성이든 고병원성이든 상관없이 인근 방역대 10km 농가는 이동제한이 걸려 농장에 입식을 못 하고 병아리는 폐기해야 한다. 적어도 고병원성으로 확진됐을 때 이동제한을 걸던가, 아니면 방역대를 3km로 재조정해주던가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살처분 보상금 현실화=살처분 보상금에 대한 현실화 제안도 나온다. 살처분이 대규모로 진행되면 수급 상 자연스레 이후 가격은 상승한다. 그런데 AI 등의 가축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방역대에 묶인 농장이라고 해서 이들 농장도 같이 살처분에 들어간다. 농장주 입장에선 ‘사유재산 침범’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그들을 더 답답하게 하는 건 살처분 보상금을 살처분 이후 가격대가 아닌, 그 이전 가격대에 맞춰 해준다는 데 있다.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에 동조한 대가에 맞는 보상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축산 농가들은 현장에 맞는 방역대 설정과 살처분 보상금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자체간 엇박자=현재 가축방역 정책은 지자체로 권한이 이양된 게 많다. 그런데 농장 출하는 해당 지자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지자체마다 따로 국밥 식 규제는 농가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이번 AI 시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육계의 경우 농가들은 전남에 많고, 도계업체는 전북에 다수 포진해 있다. 그런데 전남에서 AI가 발생하자 수십km 떨어져 있지만 발생 시군에 농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지역 닭들은 전북 도계장으로 출하 되지 못했다. 육계 농가는 대부분 계열화로 연계돼 있기에 타 도계장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이로 인해 해당 농가는 추가 사료비를 비롯해 생산비 상승을 감내해야 했다.
▲여러 제언 목소리=이외 가축전염병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양돈·가금업계에선 여러 바람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언제까지 ASF 심각단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AI 관련 백신 정책은 왜 검토하지 않는지’, ‘오리 휴지기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등이 그것이다. 특히 방역 관련 농장 실태조사 등을 하면서 1차 점검 후 경고 없이 ‘바로 과태료나 행정처분을 하는 것은 과하다’고 농가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농가 넘어 축산업계 한 목소리, 가축 방역 정책 다시 짜자=정부의 가축 방역 정책에 대한 비판은 농가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수의사나 가축방역사 등 방역 전문직군에서도 정부의 가축 방역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공중방역수의사가 지난달 발표한 농림축산식품부 방역 정책 관련 설문조사 결과 444명의 공중방역수의사 중 348명(78.4%)이 ‘농식품부 방역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가축방역사를 중심으로 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의 경우 지난 1월 일주일간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진행했다. 또 정부의 가축방역정책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며 ‘정부의 가축 질병 관련 업무가 이원화돼 있는 등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했다.
축산 농가를 넘어 전체 축산업계는 새 정부에서 가축 방역 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방역’을 ‘산업 진흥’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새 정부에서 제시해줄 수 있을까. 적어도 축산업계와의 소통 속 가축 방역 정책을 다시금 들여다보길 축산인들은 바라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 4월 22일>